
땅에 두 발을 딛고 서있는 것마냥, 그는 줄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고층 건물의 높이에서도 휘청거리는 묘기를 보이며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줄타기를 선보일 수 있는 게 시시의 재능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여유로운 그의 웃음, 신비한 시시의 눈빛. 묘한 분위기가 그의 줄타기를 더욱 인기 있게 만들었고, 어느 누구도 그의 줄타기를 따라할 수는 없었다. 그 덕에 그에게 초세계급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겠지.
처음에는 서커스단에서 줄타기를 포함한 다양한 묘기를 배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재능을 보였던 건 줄타기 곡예. 그는 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제 스승을 일 년도 채 안 되어서 뛰어넘을 정도로 재능이 넘쳐났고, 서커스단은 어린 나이에도 어른 못지 않게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시시의 초월적인 줄타기 덕분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한 번쯤은 꼭 봐야하는 공연!’ 그의 이름은 국내에서 훌륭한 재주꾼으로 유명했으며, 시시의 줄타기 공연은 언제나 매진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따끔 방송에서 출연해 인터뷰를 할 정도로, 그는 국내 사람들이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유명인사였다.




전신 그림은 @in_commission님의 커미션입니다.
Keyword :: 예민함, 인간 혐오, 속마음을 가리는 웃음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가벼운 사람임이 분명한데, 그의 속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언제나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주변의 분위기를 항상 살피고 사람들의 동향을 살핀다.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일은 최대한 기피한다. 사람들과 너무 깊숙이 얽히는 것을 피한다. 친절함은 가장일 뿐이다. 최대한 정을 주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들이니까. 어쩌면 그는 자기 자신조차도 혐오하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까지고 바보같은 웃음으로 자기 자신을 치장한다. 상대가 자신을 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만하게 보도록.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와 친절, 적당한 임기응변으로 사람들과의 적정 거리를 지킨다. 무언의 선을 지키기를 남들에게 강요하고, 그 또한 다른 사람의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사람과 사람이 깊게 얽혀봤자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그의 인간 불신은 혐오로 이어졌고, 그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어머니가 떠나고 그가 홀로 남겨진 이후, 서커스단에서는 그를 써먹을 방법을 궁리했다. 그들에게 시시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서커스단에서 돈을 벌어오는 수단이었다. 인기가 없던 서커스단은 돈을 벌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놀랍게도 시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도 가진 걸 보지 못했던, 누구보다도 줄 위에서 재주를 잘 부릴 수 있는 재능.
시시의 줄타기로 인해 입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서커스단의, 정확히는 시시의 줄타기를 보기 위해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단원들은 기쁨과 동시에 불안함이 생겼다. 아직은 어린 시시는 그들을 가족처럼 믿고 잘 따라주었다. 하지만 저 아이가 커서 반항이라도 하면, 그때 우리는 어떡하지? 그들에게는 시시를 제외하곤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시시를 서커스단에 묶어두기로 결정했다. 어린 소년의 목에는 동물에게나 걸릴 법한 쇠로 된 목줄이 채워졌다. 서커스단은 그를 사자와 호랑이가 있는 우리의 정 가운데에 있는, 마치 또 다른 우리와도 같이 철장이 달려있는 방에서 살게 했다. 목줄에 달린 사슬은 방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할만큼 길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시시를 묶어두는 족쇄였다. 여린 살은 목줄로 인해 긁히며 상처가 났다. 그것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방밖을 나설 때는 언제나 목에 붕대를 둘렀다.
방안에서 지내면서 시시는 그 옆에 있는 사자와 호랑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어릴 적의 유일한, 아직까지도 유일한 그의 친구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얌전히 갇혀 살던 시시는,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이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동물처럼 묶여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내가 왜 이렇게 묶여 살아야 하는 거지?
15살 때, 그는 도망을 시도했다. 공연이 끝난 직후 어떻게든 서커스 밖을 벗어나려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에 잘 먹지도 못해 마르고 힘없는 몸은 금새 지쳤고, 그는 단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들은 시시의 손목과 발목을 꽉 쥐고서 놓지 않았다. 그를 온통 에워싼 채로 소리를 지르고 어떤 이는 때리기까지 했다. 그를 묶어두긴 했지만 그런 모진 짓은 한번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은 그렇게 가학적으로, 무섭고, 탐욕적으로 변해있었다. 시시가 없으면 츠바키 서커스단은 별 볼 일 없지. 사람들이 누누히 말하던 말이었다. 그랬기에 시시가 서커스단을 떠나면,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가난하고 굶주릴게 분명했다.
처음으로 사람의 잔혹함을 알아버린 시시는, 그 뒤로는 제 분노와 반항심을 죽였다. 예전보다 좀 더 친근하게 굴고, 자주 웃고, 그들을 위한, 츠바키 서커스단의 영광스러운 달빛, 츠키아카리 시시가 되어주었다. 단원들은 그런 시시에게 부드럽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마치 언제 자신들이 그를 상처입혔냐는 듯. 여전히 시시의 목에는 목줄을 채우면서도.
가증스럽다. 인간들이란 존재가 싫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재주를 부리는 자신을 향해 박수나 치고 웃기나 하는 사람들밖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에게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만 쌓여갔다. 자신도 인간이라는 종족임에도, 같은 인간이 싫었다. 더 이상 아무도 믿지 않기로 결심하고서, 그 누구에게도 진짜 본심을 내비치지 않는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그리 생각했다.
시시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유하게 웃으며 그들을 상대했다. 목줄을 풀어도 보이지 않는 목줄에 묶인 그는 초세계급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뒤에도 서커스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시시의 보호자라고 주장하며 그가 가져야 할 권리들을 당연하게도 빼앗았다. 초세계급이 된 이후로는 원래 살던 우리를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목에 걸린 목줄은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번 더 그들을 화나게 했다간, 폭력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없는 그는 차마 다시 달아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그 자신이 이미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상실한 탓도 있었다.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티면, 그땐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길 것이다, 라는 생각 하나로 아직 어린 취급을 받는 소년은 이를 악물며 버티고 있다.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스스로 언제나 되뇌이는 말. 균형이 깨지면, 그땐 추락밖에 남아있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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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풀면, 과거 목줄에 걸려있던 탓에 여전히 목이 졸린듯한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상처가 새롭지 않음에도, 흉터를 보이기를 꺼려하며 매번 목을 감싼 붕대를 새것으로 갈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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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당시 붙잡혔을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목을 건드는 것, 또는 자신을 강제로 힘으로 붙잡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패닉 수준으로 그러한 행동을 거부하게 되며, 억지로 그런 행동을 취할 시 그의 거짓된 상냥한 가면이 벗겨지는 걸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